본문 바로가기
독서

어긋난 부자 사도 세자 결말

by Vario 2022. 11. 26.
반응형

왕이 되지 못한 사도 세자 죽음 뒤

정순 왕후의 가족과 김상로의 대화를 보면 사도 세자가 왜 뒤주를 동원해가면서 까지 죽어야 했나를 알 수 있다.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가 사약을 내리면 되지 않냐 말을 하는데 정순왕후의 김귀주의 아버지인 김한구와 김상로가

말을 하는데 사약을 내리거나 참수를 하게 되면 역적에게나 내리를 것이라며 그 3대는 역적이 된다.

그러면 아비지인 영조 자신도 역적이 되기 때문에 "미쳐서" 아버지에게 해를 끼치려 한 아들을 왕이 아닌 분노로 "미친"

아버지가 아들을 죽임으로서 이를 어디까지나 일반 강정문제로 한정되어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일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세자가 역적이 되면 아버지 자신인 물론 손자인 세손까지 역적이 되기에 세손을 아끼는 영조로서는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영조는 못난 아버지다.

어릴 때 쏟은 사랑이 성인이 되기까지 쭉 유지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자신과 나라만을 생각하면서 별 시답잖은 이유로

아들을 책망하고 끝내 아들을 죽이게 될 운명이라면서 단호하게 나오는 모습에 화를 낸다.

마지막에 사도세자를 걱정하면서 그래 왔다는 이야기나 의리를 내세우며 사도세자에 관한 기록을 지우는 모습이 참으로 

비탄하다.

아버지의 욕심때문에 어긋난 부자  

하지만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면서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변호하는 말을 하는데 이때 피눈물을 흘리면서 임금이 얼마나

무겁고 책임이 있는 자리인지를 각인시키는 말을 한다.

"내가 임금이 아니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가정이었음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상의 모습은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조는 왕으로서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군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줄타기가 얼마나 위태 위태 로운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간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공부를 했고 경연에서도 신하들의 말문을 막을 정도의 학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도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부에 힘을 써야 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취미생활에 빠져 살자 아버지 입장에서는 조바심에 

계속해서 아들을 가혹하게 훈계를 했는데 반대로 아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더욱더 삐뜰어지게 되고 

아버지는 실망감에 점점 더 차갑고 잔인하게 변한 것이다. 어쩌면 부모의 욕심때문에 자식을 잘 못 된 교육방식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식은 어긋나 버리고 영조는 미래의 왕이란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만 않았다면 저렇게 까지 아들을 몰아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상에 영조가 아들을 사랑했음을 세자가 죽고 시호를 내리는데 영화상에서 나오는 OST의 제목이 "너를 생각하며 슬퍼하노라"이다 단순히 과오를 뉘우쳤다며 시법에 맞춰 "사도"라는 시호를 내린 실제 역사와 달리.

극 중 영조는 정말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사" 슬퍼하는 의미로 "로"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14년 뒤. 영조가 죽기 전 청년이 된 세손과 함께 당시의 기록들을 세초하는 것을 바라보며 세손에게 너의 아버지가 일은

다시 꺼내선 안된다고 당부하는데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인 것이 큰 충격을 받았는지 세손과의 대화 중에도 눈물을 흘리는데. 영화상에서 삭제된 장면에서는 숙종을 모시는 빈소를 찾아가 영조가 아버지 자식 하나를 건사하지 못하는 이 불초소생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며 슬퍼하는 모습이 있다.

실록에서는 자식의 죽음에 슬퍼했다는 말은 적혀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정을 표현 못한 부분과 아들을 죽인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듯하다.

영조는 사도 세자를 사랑했을까?

영화에는 아들을 사랑하긴 한 것으로 연출이 되었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는 어땟는지 적혀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영조도 임금이기 전에 인간이자 아버지로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자기 손으로 죽였는데 마음이 편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적으로는 영조가 세자를 사랑을 표했다 했었다 라는 말을 적혀 있지 않다. 

한편 역사로 기록된걸 보면 영조가 사도세자를 사후 복권시킨 것은 후회스러워서가 아니며 정치적으로 세손의 정통성을 위해 당연히 세자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죽자마자 바로 복위시킨 것이다. 그리고 정막 복권된 사도세자를 남들도 흉지 라고 꺼리는 땅에 매장을 했다.

이 부분을 보면 정말 애초에 아들에 대한 기대심리가 너무 높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사도세자의 만행을 보고 자식이고 

뭐고 인간적으로 아들을 혐오하게 생각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역사기록에서는 사도세자는 툭하면 사람을 죽여대고 기행을 임살았으니 아버지 이전에 인간으로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자를 미치광이로 만든 건 자식 교육을 잘 못된 방식으로 한 영조 탓이 크다.

역대 왕들의 기록에서도 후계자에게 엄격하게 자식을 교육도 하고 자식과 사이가 나쁜 왕이 없지는 않았지만 자식을 이 처럼 대한 왕은 손에 꼽는다. 

영화상에서 너, ~니? 등 간략하고 짧은 대사들이 많은데, 실제 궁중어투라서 쓰인 것이다.

궁중 어투를  잘 살린 것이다. 실제로 영조는 신하가 아침에 문후를 여쭐 때에도 나는 일없다. 하는 식으로 짤막하게 답했다.

한중록 기록을 봐도 영주는 세제에게 "그 술은 누가 주더니?"네가 불한당이냐"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응형